
-스톤월 항쟁 기념 논평-
[소외에, 소외에 연대합시다.]
6월 28일부터 7월 3일, 우리는 오늘 다시금 1969년의 스톤월 항쟁이 있었던 날들을 지나고 있습니다.
1969년 6월 28일 새벽 1시 20분, ‘스톤월 인’ 술집을 급습한 공권력의 폭력이, 단속과 연행이 그동안 자행되어왔던 것처럼 손쉽게 흘러가지 않았던 까닭은 ‘저항’에 있었습니다. 그 저항에 동참한 연대에 있었습니다.
스톤월 항쟁이 하루, 이틀, 사흘을 넘어 거세지고, 항쟁을 계기로 성소수자 해방 운동의 불씨가 당겨진 것은 성소수자의 존재가 ’청소’의 대상이었던 그때에, 일상의 억압을 견딜 수 없었던 존재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끝내 우리의 존엄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마음들이 모여 연대가, 이웃의 목소리를 나의 목소리 삼은 연대가 모여 군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이지 않은 우리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되어 우리의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비이상적으로 연결된 지금의 세계에서, 우리 각자는 과연 어디까지 주체일 수 있는지 상상해 본 적 있으신가요. 박탈당한 주체성들만이 나뒹구는 세상에서, 주체되는 것마저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불현듯 알게 된 때에, 그 뒤집힌 시야에서만 보이는 삶들이 있습니다.
숨 쉬는 우리의 살만함은 어디에 기대어 있습니까. 우리의 존엄은, 누구의 존엄도 배제하지 않은 모두의 존엄에 기대어 있습니까. 혁명 이후에야 있었던 존엄을,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시절들을, 1969년 그 흑백필름 속에서 존엄을 지켰던 삶들을 잊지 맙시다. 그것으로부터 말미암아, 기록되지 못한 그 어떤 항쟁까지도 기억해야 함을 떠올립시다.
퇴행하는 세계에서, 경쟁을 경쟁적으로 생산해 내는 피라미드의 세상에서, 차별과 혐오를 이유 삼아 셀 수 없이 많은 삶들을 도륙해 온 파시즘의 세계에서도 길을 잃지 말고, 다만 저항합시다.
나의 극복이 우리의 극복이 될 수 있음을, 우리의 극복이 나의 극복이 될 수 있음을 압시다. 스러져가는 생명에, 불씨에, 숨을 불어넣읍시다. 사람들을, 평화를, 목소리 냄으로 살립시다. 다만 행동합시다.
6월은 자긍심의 달입니다. 스톤월 항쟁이 있던 날에서 꼭 1년째 되던 날, 다시 항쟁의 자리에서 시작된 성소수자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우리의 자긍심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천박함과 정숙함도, 가치있음과 무가치함도, 반짝임과 빛바램도, 허용과 불허마저도 누군가에 의해 발명된 것임을 발견합시다. 그것들이 때때로 혹은 자주 차별과 혐오를, 학살과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것을 발견합시다.
우리의 프라이드는 항쟁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아래로, 아래로 연대합시다. 우리의 눈꺼풀 아래에, 빗겨난 초점에도 자긍심이 있음을 상기합시다. 소외에, 소외에 연대합시다. 그 깃발 아래 함께 섬으로 항쟁합시다.
스톤월 항쟁이 있던 자긍심의 달 6월의 말일. 2025년 6월 30일.
제주퀴어프라이드 조직위원회
-스톤월 항쟁 기념 논평-
[소외에, 소외에 연대합시다.]
6월 28일부터 7월 3일, 우리는 오늘 다시금 1969년의 스톤월 항쟁이 있었던 날들을 지나고 있습니다.
1969년 6월 28일 새벽 1시 20분, ‘스톤월 인’ 술집을 급습한 공권력의 폭력이, 단속과 연행이 그동안 자행되어왔던 것처럼 손쉽게 흘러가지 않았던 까닭은 ‘저항’에 있었습니다. 그 저항에 동참한 연대에 있었습니다.
스톤월 항쟁이 하루, 이틀, 사흘을 넘어 거세지고, 항쟁을 계기로 성소수자 해방 운동의 불씨가 당겨진 것은 성소수자의 존재가 ’청소’의 대상이었던 그때에, 일상의 억압을 견딜 수 없었던 존재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끝내 우리의 존엄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마음들이 모여 연대가, 이웃의 목소리를 나의 목소리 삼은 연대가 모여 군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이지 않은 우리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되어 우리의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비이상적으로 연결된 지금의 세계에서, 우리 각자는 과연 어디까지 주체일 수 있는지 상상해 본 적 있으신가요. 박탈당한 주체성들만이 나뒹구는 세상에서, 주체되는 것마저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불현듯 알게 된 때에, 그 뒤집힌 시야에서만 보이는 삶들이 있습니다.
숨 쉬는 우리의 살만함은 어디에 기대어 있습니까. 우리의 존엄은, 누구의 존엄도 배제하지 않은 모두의 존엄에 기대어 있습니까. 혁명 이후에야 있었던 존엄을,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시절들을, 1969년 그 흑백필름 속에서 존엄을 지켰던 삶들을 잊지 맙시다. 그것으로부터 말미암아, 기록되지 못한 그 어떤 항쟁까지도 기억해야 함을 떠올립시다.
퇴행하는 세계에서, 경쟁을 경쟁적으로 생산해 내는 피라미드의 세상에서, 차별과 혐오를 이유 삼아 셀 수 없이 많은 삶들을 도륙해 온 파시즘의 세계에서도 길을 잃지 말고, 다만 저항합시다.
나의 극복이 우리의 극복이 될 수 있음을, 우리의 극복이 나의 극복이 될 수 있음을 압시다. 스러져가는 생명에, 불씨에, 숨을 불어넣읍시다. 사람들을, 평화를, 목소리 냄으로 살립시다. 다만 행동합시다.
6월은 자긍심의 달입니다. 스톤월 항쟁이 있던 날에서 꼭 1년째 되던 날, 다시 항쟁의 자리에서 시작된 성소수자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우리의 자긍심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천박함과 정숙함도, 가치있음과 무가치함도, 반짝임과 빛바램도, 허용과 불허마저도 누군가에 의해 발명된 것임을 발견합시다. 그것들이 때때로 혹은 자주 차별과 혐오를, 학살과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것을 발견합시다.
우리의 프라이드는 항쟁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아래로, 아래로 연대합시다. 우리의 눈꺼풀 아래에, 빗겨난 초점에도 자긍심이 있음을 상기합시다. 소외에, 소외에 연대합시다. 그 깃발 아래 함께 섬으로 항쟁합시다.
스톤월 항쟁이 있던 자긍심의 달 6월의 말일. 2025년 6월 30일.
제주퀴어프라이드 조직위원회